열린 공간 뉴스/보도자료
제 목 170308_인문학으로 삶이 바뀐 노숙인의 인생 스토리
등 록 일 2017-03-16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인문학으로 삶이 바뀐 노숙인의 인생 스토리
2017.03.08. 11:21
http://blog.naver.com/future4all/220952881447

성프란시스대학 교육 통해 삶이 변화된 노숙인의 
풀스토리를 소개합니다

“모두 한 걸음 더 나가자 모두 한 걸음 더 나가자/ 낡은 것만 버리고 손에 손을 잡고 나가자/온세상을 두루 다니며 더욱 많은 것을 배운다/ 새로 만난 많은 것 마음으로 함께 배운다”
지난 2월 15일 열린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12기 수료식에서 수료생들이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축하하고 있다./ⓒ성프란시스대학

지난 2월 15일 오후 4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성미가엘성당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12기 수료생들이 부르는 교가 합창이었다. 1년 동안의 모든 수업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는 자리. 이들의 눈빛과 목소리엔 뭉클한 감동이 가득했다. 

이날 인문학 과정을 마친 노숙인 수료생은 총 15명. 생전 처음 학사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입은 이들이 대부분. 수료생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리자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단상 앞으로 나갔다. 1년 간의 대학생활을 담은 영상을 보던 중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공로상을 받은 이윤(59)씨는 “교수님들께서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강조했다”며 “졸업 후에도 인문학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수업을 듣고 있는 노숙인 교육생들./ⓒ성프란시스대학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은 2005년부터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다시서기센터)와 성공회대학교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노숙인 대상 인문학 학교이다. 총 1년 과정으로 주 3회, 2시간씩 글쓰기와 한국사, 철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 3월에도 25명의 노숙인 교육생을 모집해 인문학 교육뿐 아니라 치유의 시간도 제공한다. 다시서기센터 관계자는 “쪽방촌, 노숙인 쉼터에서 인문학 학교를 찾아온 졸업생들이 다시 재활용 회사에 입사하거나 사회복지 수혜자에서 벗어나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로 일하기도 한다”면서 “특히 이번 12기 수료생 중에서 삶이 변화된 두 분의 사연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지 않아요(이도림?57)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에 나가겠습니다.” 이날 공로상을 받은 이도림 씨가 수료생 대표로 답사를 하고 있다./ⓒ성프란시스대학

저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서울의 콩나물공장에서 일하시며 저와 누나들을 먹여 살리셨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신발공장에서 일하다가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선원이 됐어요. 누가 그러더군요. 배를 타면 돈을 많이 번다고요. 하지만 배 위에서 3년동안 일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발 공장에 취직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정리해고를 당했어요. 그 날 이후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그동안 착하게 살았는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부터 거리로 나와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길거리 생활을 하기 싫어지더군요. 왜냐고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워서요.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뼈빠지게 고생하셨는데 아들이 효도는 못할 망정 노숙인이 되다니…이런 불효가 어디 있어요. 2014년 노숙인 생활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서울역에 있는 다시서기센터에 갔어요. 서울역 다시서기센터에서 운영하는 ‘우리 옷방’에서 공공근로자로, 센터의 응급 대피소에서 야간 순찰자로 근무했습니다. 일을 하며 번 돈을 모아서 작지만 제가 생활할 곳도 스스로 마련했어요.

돈을 벌기 시작하니 무언가 배우고 싶더군요. 마침 노숙인을 받아주는 대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서를 냈어요.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노숙인대학인 ‘성프란시스대학’에 합격한 거예요. 대학에서는 글쓰기, 문학, 철학, 역사를 배웠어요. 남한산성, 경복궁 등으로 현장실습도 나갔고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교수님, 학우들과 소풍, MT도 갔어요. 그 중에서 저는 시 쓰기 수업이 가장 좋았어요. 짧은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시를 써 보며 언젠가 나도 시집을 내겠다는 다짐도 했답니다.

무엇보다 인문학강좌를 통해 길거리 생활을 하면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었어요. 노숙인이었을 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깊은 상처를 입었어요. 사람들과 만나고 눈 마주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죠. 반면 이곳에선 교수님들께 좋은 말씀을 듣고 학우들과 어울려 지내며 사회에 다시 나올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제 번듯한 직업도 가졌어요. 얼마 전 가락시장에 있는 재활용분류작업 회사에 정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또 고시원에서 벗어나 방 2개짜리 임대주택으로 이사해요. 요즘 제게 좋은 일만 생겨 정말 행복해요. 이게 꿈은 아니겠죠?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니 술 생각이 사라졌어요 (박남철?가명?61)
 

수료식에서 김성수 성공회대전총장에게 졸업장을 받는 이도림 씨./ⓒ성프란시스대학
이혼 후 매일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결국 알코올중독 진단을 받았고 몇 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알코올중독 치료는 정말 힘들었어요. 술을 끊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순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더라고요. 회복, 악화를 반복하다가 병원 치료를 그만두고 방황했어요. 십여 년 동안 길거리와 알코올중독치료센터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다 노숙인재활센터인 비전스쿨트레이닝센터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다가 ‘배움’에 관심이 생겼어요. 공부에 열중하다 보니 술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이때부터 무엇인가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배울 것을 찾아 다니다가 성프란시스대학의 박경장 교수님의 추천으로 인문학과정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은 제게 딱 맞는 배움터였어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저는, 늘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든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기술을 배우는 것 말고 철학이나 문학, 예술처럼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인문학을 꼭 배워 보고 싶었어요. 특히 전 철학을 좋아했어요. ‘사람은 왜 사는가’에 대한 선인들의 고민 흔적을 보는 일이 매우 재미있었어요. 한국사 수업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박한영 교수님께서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소개하시면서 그와 관련된 조선 역사를 알려주셨어요. 그림을 보면서 역사를 배우니 전혀 지루함을 모르겠더라고요. 아, 몇 달 전에는 박 교수님께 배운 한국사 지식을 실제로 써먹었어요.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에서 주최하는 둘레길 행사에 참여해 함께 청와대 뒷길을 걸었는데요. 같이 갔던 사람들에게 청와대 뒤 인왕산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그날 마치 제가 역사 선생님, 문화 해설사가 된 것 같아 뿌듯했어요.

오늘 학사모와 가운을 입고 수료식 단상에 서니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그동안 훌륭한 아빠, 좋은 남편이 돼주지 못한 것 때문에 회한의 나날을 살아 왔어요. 이젠 그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저만의 즐거움을 찾으며 행복하게 살 거예요. 그래서 올 3월부터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문화교양학을 공부할 예정이에요. 예전에 했던 건설일도 다시 시작할 겁니다. 다시 찾은 인생 즐겁게,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